
두번째 해외 마라톤으로 사이판 마라톤 Half 코스를 선택했다. 사이판 마라톤은 작은 섬에서 열리는 대회여서인지 전체 참가자가 700~800명쯤 되는 작은 규모의 마라톤 대회이다.
사이판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 괌하고 비교하자면 조용한 시골 동네에 놀러온 느낌이었다. 호텔 위치가 가라판이라는 나름의 사이판 번화가(?)라고 들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시골 동네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 휴양 온 기분이 나긴 했다.
사이판 마라톤 Half 코스 출발은 3월 8일 새벽 5시여서 전날 일찍 자려고 노력해보았다. 평소보다 일찍 자려고 누우니 잠이 잘 안왔다. 3시간 남짓 자고 3시쯤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대회장 근처인 크라운플라자 호텔을 숙소로 잡아 이동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레이스 시작전 간단한 식사를 해결 하려면 최소 2시간 전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바나나, 빵 등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잠시 쉬면서 무릎 테이핑을 하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둠짓둠짓 신나는 음악도 들리고 사람들도 제법 모여 있어서 마라톤 대회장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몸도 풀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아직 깜깜한 어둠을 뚫고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5! 4! 3! 2! 1! Let's go!
출발지 부근을 벗어나니 해가 뜨기 전까지는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는 길을 달려야 했다. 처음해보는 경험이었지만 2~3키로 지점부터 페이스가 비슷한 그룹을 만나 서로 의지하면 달려나갔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해서인지 이미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습하고 더운 날씨가 사우나에 들어 앉아 있는 것처럼 비오듯 땀을 쏟아내게 했다. 이럴때는 체력이고 뭐고 멘탈 싸움이라고 견뎌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중에 레이스를 마친 후 알게되었지만 같은 그룹에 있던 사람들은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러너였다. 어둠속에서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경쟁하며 레이스를 이어나갔다.

몇 번의 보급소를 지났을까? 저 멀리 반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먼저 반환하여 돌아오는 러너가 한명 지나갔다. 그 후로 내가 속해 있는 그룹이 두번째로 반환점을 돌았다. 문득 이 그룹에 러너가 4명이니 포기하지만 않아도 5등안에는 들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고 맨 뒤에서 숨을 돌리며 레이스를 이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 러너가 뒤쳐지기 시작했다. 12~13키로 지점부터 미국, 중국 러너가 경쟁하듯 페이스를 올렸다.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조금만 더 버티자라고 다독이며 따라붙었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15키로 부근 좀 안되어 중국인 러너가 페이스를 늦추며 먼저 가라는 신호를 했다. 이제 2위 그룹에 남은 건 미국인 러너와 나였다. 잠시 소강 상태로 레이스가 진행되다가 이 친구가 서서히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를 따돌리기 위한 것이란 걸 알았지만 계속 따라붙기 버거웠다. 이때 페이스를 체크해 보니 3분 후반대였다. 20~30미터 차이까지 뒤쳐지기도 했지만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계속되는 땀방울에 양쪽 다리에 붙인 테이핑은 다 떨어져나가 덜렁거렸다.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액션카메라의 무게도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풀숲에 던져놓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팔도 제대로 안들리는걸 보니 이미 체력적으로는 한계가 온것 같았지만 페이스를 조금 늦춰가며 참아냈다. 그때였다. 멀찌감치 앞서가던 미국인 러너의 속도가 확연히 줄어드는게 보였다. 점점 가까워졌고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오랜시간 함께했던 친구여서인지 걱정스러 마음에 몸상태가 괜찮은지 물었고 미국인 러너는 한쪽 다리를 가리키며 좀 불편하다고 했다. 아마도 쥐가 나려는 듯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자긴 괜찮으니 먼저 가라는 제츠쳐를 취했다. 그렇게 약 18키로 지점부터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외로웠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10K 주자들과 겹치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지막 코너를 돌자 저 멀리 출발지의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마지막 코너에서 결승점까지 500~600미터의 거리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결승점과 점점 가까워지며 사회자가 내 이름을 호명해주는 것이 들렸다. 드디어 끝났다!!!
Number 315! South Korea OOO!!
그렇게 난 사이판 마라톤 하프 코스에서 2등으로 골인했다.


먼 나라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입상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뿌듯했다. 하지만 레이스 내내 너무 힘들고 괴로웠기에 내년에 다시 참가한다면 펀런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결승선 라인에 서서 주자들을 응원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연예인을 두 분이나 봤다. 션과 유이였다. 두 분 모두 멋진 폼으로 잘 달린다. 진심으로 멋져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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